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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시대 Vol.3 산업

Vol. 3 · Chapter 19

제18장. 지정학과 AI 패권

김정기 · JK2026년 8월 6일Vol 3 · Chapter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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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지정학과 AI 패권

이 장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될 것: 미중 기술 전쟁이 매트릭스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 각국의 반도체·AI 정책이 무엇을 노리는지, 한국이 이 지정학 게임에서 어떤 위치인지

도입: 기술이 무기가 된 시대

2022년 10월 7일, 미국 상무부가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이 날짜는 반도체 산업사에 기록될 것이다. 기술이 공식적으로 지정학의 무기가 된 날이기 때문이다.

수출통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중국이 최첨단 AI 칩을 만들지도 사지도 못하게 한다. 칩, 장비, 소프트웨어, 인력까지 통제한다. 목적은 AI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산업 분석에서 지정학은 외부 변수였다. 이제는 핵심 변수다. 매트릭스를 지정학 없이 읽으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18.1 미국의 수출통제 — 구조와 논리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는 세 층으로 구성된다.

첫째, 칩 수출 통제. NVIDIA의 A100, H100 등 고성능 AI 칩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한다. 성능 기준(TOPS, 대역폭)을 정해 그 이상의 칩은 수출 불가.

둘째, 장비 수출 통제. ASML EUV(2019년부터),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램 리서치·KLA의 첨단 장비, 도쿄일렉트론의 일부 장비. 중국이 자체 제조도 못하게 한다.

셋째, 인력 통제. 미국 시민권자가 중국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제한. 기술 이전의 채널을 차단.

논리는 무엇인가. AI가 군사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중국이 AI에서 미국을 따라잡으면 군사적 균형이 깨진다. 그래서 AI의 물리적 기반인 반도체에서 중국을 봉쇄한다.

이 논리가 맞는지는 논쟁이 있다. 그러나 정책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매트릭스를 실질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18.2 중국의 대응 — 자립과 우회

중국의 대응은 세 갈래다.

자립화. 화웨이 Ascend, SMIC, NAURA, AMEC. 자체 칩, 자체 장비, 자체 소재를 만든다. 정부가 수천억 위안을 투입한다(국가 집적회로 산업 투자기금). 성과가 있다. SMIC가 DUV로 7나노를 만들었다. 그러나 EUV 없이 5나노 이하는 아직 불가능하다.

메모리에서도 자립이 진행 중이다. **CXMT(창신메모리)**가 D램 양산을 시작했다. 아직 DDR4 수준이고 최첨단과 2~3세대 격차가 있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서 점유율을 키우고 있다. **YMTC(장강존저)**는 낸드 자립의 핵심이다. 128단 이상의 3D 낸드를 양산하다가 미국 수출통제로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이 YMTC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은, 이 회사가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실질적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출통제가 없었다면 YMTC의 가격 공세가 글로벌 낸드 시장을 흔들었을 것이다.

오픈소스 활용. Llama, RISC-V 같은 오픈소스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오픈소스가 중국의 우회로가 된다. DeepSeek이 오픈소스 기술을 활용해 자체 아키텍처로 GPT-4에 근접한 모델을 만든 것이 증거다.

우회 수입. 동남아시아, 중동을 통한 우회 수입이 적발되고 있다. 미국이 단속하지만 완전히 막기 어렵다.

중국의 AI 자립이 성공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미국에 밀릴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모른다. 중국에는 14억 인구, 거대한 내수 시장,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다. 5~10년 지연은 있겠지만, 영원한 봉쇄는 비현실적이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미국의 수출통제가 중국을 5년 늦출 수 있다면, 미국은 그 5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면 봉쇄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체 투자와 혁신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18.3 CHIPS Act와 반도체 민족주의

미국의 CHIPS and Science Act(2022). 반도체 제조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520억 달러를 투입한다.

목적.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대만 의존을 줄인다. TSMC, 삼성, 인텔이 미국에 팹을 짓도록 보조금을 준다.

현황. TSMC 애리조나 팹(4나노, 3나노). 삼성 텍사스 팹(파운드리). 인텔 오하이오 팹. SK하이닉스 인디애나 패키징 공장.

미국만이 아니다. EU는 European Chips Act(430억 유로). 일본은 라피더스(Rapidus) 프로젝트(2나노 파운드리 목표). 한국은 K-Chips Act(세액 공제 확대). 인도도 반도체 유치에 나섰다.

이것이 반도체 민족주의다. 각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추려 한다. 과거의 글로벌 분업이 무너지고 있다. 효율보다 안보를 우선시하는 시대.

18.4 EU AI Act — 다른 종류의 규제

유럽은 미국, 중국과 다른 접근을 한다. 기술 개발보다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

EU AI Act(2024).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이다. AI 시스템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고위험 AI에 투명성, 안전성, 인권 보호를 요구한다.

의미. 유럽에서 AI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이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OpenAI, Google, Meta 모두 유럽 시장을 위해 규정을 따라야 한다.

비판. 규제가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유럽에서 Foundation Model 회사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규제 환경이라는 주장.

반론. 신뢰할 수 있는 AI가 장기적으로 시장을 키운다는 반론. 규제가 오히려 유럽 AI 기업에 차별화 기회를 준다는 주장.

한국은 아직 포괄적 AI 규제법이 없다. 논의 중이다. 미국 스타일(자율 규제)과 EU 스타일(강제 규제) 사이에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

18.5 반도체 동맹 — Chip4와 그 너머

미국은 반도체 동맹을 형성하려 한다.

Chip4. 미국, 일본, 한국, 대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4개국을 묶으려는 시도. 중국을 배제하는 구도.

한국의 딜레마가 여기서 드러난다. 한국은 미국의 안보 동맹국이면서, 중국이 최대 수출 시장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매출 중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나온다. 미국 편을 완전히 들면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다. 중국 편을 들면 미국의 기술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

이 줄타기가 한국 정부와 기업의 최대 외교적 과제다. 정답은 없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의존하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18.6 지정학이 매트릭스를 재편하는 방식

지정학이 매트릭스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하자.

매트릭스의 분열. 하나의 글로벌 매트릭스가 두 개로 분열될 수 있다. 미국/동맹국 매트릭스와 중국 매트릭스. 각각이 자체 완결적인 가치사슬을 가지려 한다.

비용 증가. 분업이 무너지면 효율이 떨어진다. 같은 칩을 만들더라도 비용이 더 든다. TSMC의 미국 팹은 대만 팹보다 비용이 30~50퍼센트 높다.

혁신 속도 변화. 봉쇄가 중국의 혁신을 늦출 수도 있고, 오히려 자립 노력을 가속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기술 봉쇄는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확실하다.

새로운 기회. 매트릭스가 분열되면 양쪽 모두에 공급할 수 있는 "중간 지대" 회사에 기회가 생긴다. 한국이 이 위치를 활용할 수 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글로벌 매트릭스가 미국 블록과 중국 블록으로 분열되면, 한국은 어느 쪽에 속하게 되는가?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인가?

18.7 지정학 리스크의 투자 함의

투자자 입장에서 지정학 리스크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

리스크 프리미엄. 대만 집중(TSMC)에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이것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수혜주. 수출통제와 리쇼어링(reshoring)의 수혜주가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관련 회사들. 장비 회사들(팹이 더 많이 지어지니까). 한국의 HBM 회사(미국이 한국 메모리를 필요로 하니까).

피해주.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장비 회사.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

헤지. 양쪽 모두에 노출된 포트폴리오가 헤지가 된다. 한 블록에만 모든 것을 걸면 리스크가 크다.

18.8 트럼프 2기의 모순 — 정책이 흔들린다

18.1부터 18.7까지 미국의 수출통제, 칩스법, EU AI Act, 칩 4 동맹을 다뤘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한다. 트럼프 2기가 시작된 후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4월에 트럼프가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를 발표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10 퍼센트 기본 관세를 매겼다.[^20] 메시지는 단순했다. 공장을 미국으로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관세를 더 매기겠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난 2025년 12월의 데이터를 보면 결과가 신통치 않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6만 명 가까이 줄었다.[^21] 트럼프가 4월에 말한 그 다짐 이후로 공장 일자리가 연속 8개월 줄어들었다. 관세는 매겼는데 공장은 안 돌아왔다.

왜 안 돌아왔는가. 이유가 몇 개 있다.

첫째, 시간이다. 공장을 짓는 데 5년이 걸린다. 관세 발표한다고 다음 달에 공장이 생기지 않는다. TSMC가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는다. 2020년에 발표해서 2025년에 첫 가동했다.[^22] 5년 걸린 것이다.

둘째, 인력이다. 공장이 있어도 거기서 일할 사람이 없다. TSMC가 애리조나에서 처음에 노동력 부족으로 가동을 1년 늦췄다. 결국 대만 노동자 1천 명을 데려왔다.[^23] 피사노와 시가 2009년에 한 말이 다시 살아난다. 한 번 잃은 산업 공유지는 단기간에 못 만든다.

셋째, 모순된 정책이다. 2025년 12월에 트럼프가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NVIDIA의 첨단 칩 H200을 중국에 팔게 허가했다. 대신 수익의 25 퍼센트를 미국 정부가 가져간다.[^24] 중국을 막겠다던 정책이 갑자기 풀렸다. 왜? 돈 때문이다. NVIDIA의 매출이 너무 커서 미국 정부가 그 일부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 미국 정책이 일관되지 않다. 어떤 날은 중국을 막고, 어떤 날은 중국에 판다. 한국 같은 동맹국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른다. 미국 편에 섰는데 미국이 갑자기 중국과 거래해버리면 한국은 어디 있는가.

이건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18.5에서 다룬 "한국의 줄타기"가 더 어려워졌다. 한국이 어느 한쪽에 완전히 붙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조차 일관되게 한 쪽에 안 붙기 때문이다.

18.9 글로벌로니 다시 — 매트릭스는 진짜 글로벌한가

여기서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보자. 이 책의 매트릭스는 글로벌 매트릭스라고 부른다. 정말 글로벌한가?

1.7에서 게마와트와 오닐 얘기를 했다. 그들이 말했다. 세계는 글로벌화된 게 아니다. 지역화됐다.[^25]

매트릭스를 그릴 때 이 명제를 다시 적용해보자.

NVIDIA GPU를 보자. 설계는 미국에서 한다. 제조는 대만 TSMC에서 한다. 그 안에 들어가는 HBM은 한국 SK하이닉스가 만든다. 패키징은 다시 대만에서 한다. 완성된 GPU는 미국 데이터센터에 들어간다. 일부는 한국, 일본, 유럽 데이터센터로 간다. 중국으로는 거의 안 간다.

이게 글로벌인가? 자세히 보면 글로벌이 아니다. 북미와 동아시아만이다. 유럽은 조금. 중국은 빠져 있다. 인도,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는 아예 안 보인다.

그러니까 매트릭스는 글로벌 매트릭스가 아니다. 미국-동아시아 매트릭스다. 거기에 유럽이 약간 붙어 있다. 중국이 따로 자기 매트릭스를 만들고 있다.

이 인식이 중요하다. 왜 중요한가.

첫째, 매트릭스의 진짜 경쟁은 두 매트릭스 사이에서 일어난다. 미국-동아시아 매트릭스 vs 중국 매트릭스. 이 두 매트릭스의 경쟁이 18장에서 다룬 지정학의 본질이다.

둘째, 한국의 위치가 이 인식에서 더 정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미국-동아시아 매트릭스의 중심 노드 중 하나다. 동시에 중국 매트릭스의 가장자리에도 있다. 두 매트릭스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셋째,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면 안 된다. 글로벌 공급망. 글로벌 가치사슬. 글로벌 AI. 다 글로벌이 아니다. 부분적으로 글로벌이고 대부분은 지역적이다. 게마와트가 2007년에 부활시킨 80년 된 단어 "글로벌로니"가 여전히 살아 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일하는 산업의 가치사슬을 그려보라. 그 사슬에 들어 있는 나라가 몇 개인가? 그 나라들이 한 지역에 몰려 있는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가? 만약 한 지역에 몰려 있다면, 당신의 산업도 "지역 사슬"이지 "글로벌 사슬"이 아니다.


핵심 정리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칩, 장비, 인력)가 매트릭스를 두 블록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중국은 자립화, 오픈소스 활용, 우회 수입으로 대응한다. 단기 지연은 불가피하지만 장기 봉쇄는 불확실하다.

CHIPS Act, European Chips Act, K-Chips Act 등 각국이 자국 내 반도체 생산에 투자한다. 반도체 민족주의 시대.

한국은 미국 동맹과 중국 시장 사이의 줄타기가 최대 과제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의존하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정학이 매트릭스의 외부 조건이 아니라 핵심 변수가 되었다. 기술만으로 매트릭스를 읽을 수 없다.

반드시 답해봐야 할 질문 5가지

질문 1. 미국의 수출통제가 10년 후 중국의 반도체·AI 발전을 실제로 얼마나 늦췄을 것인가?

질문 2. 대만 해협 위기가 현실화되면 글로벌 경제에 어떤 충격이 오는가? 이것에 대비할 수 있는가?

질문 3. 한국이 Chip4 동맹에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어떤 카드를 가져야 하는가?

질문 4. 반도체 민족주의가 효율적 글로벌 분업을 무너뜨리면, 칩 가격은 얼마나 올라가는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가?

질문 5. AI 규제(EU AI Act 등)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한국은 어떤 규제 모델을 따라야 하는가?

더 깊이 탐구하기

미국 상무부 BIS, 반도체 수출통제 규정 원문 및 FAQ. 수출통제의 정확한 범위.

CHIPS and Science Act 원문 및 시행 세칙. 미국 반도체 정책의 구체적 내용.

EU AI Act 원문 (2024). 세계 최초 포괄적 AI 규제의 구조.

Chris Miller, 「칩 워」. 반도체 지정학의 역사와 맥락.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반도체 수출통제 분석 시리즈. 미중 기술 전쟁의 가장 깊이 있는 정책 분석.


다음 장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매트릭스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능한 길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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