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수치
  • 계약서 검토 연 36만 시간에 해당하는 업무 → 문서별 수초: JPMorgan COIN
  • 업무시간의 60~70% → AI 등으로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 McKinsey
  • 2023년 사기 거래 400억 달러 규모 차단: Visa
  • 조달 업무 속도 최대 4배 개선: Accenture가 제시한 조달 혁신 성과
  • AI 에이전트의 조정비용 → 표준화 수준에 따라 감소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1937년 영국의 경제학자 Ronald Coase가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시장에서 거래하면 될 텐데 왜 회사라는 조직을 만드는가[1].

답은 거래비용이었다.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든다. 물건을 팔 사람을 찾는 비용. 가격을 흥정하는 비용. 약속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비용. 약속을 어겼을 때 따지는 비용.

이 비용이 너무 크면 차라리 사람을 고용한다. 조직 안에서 처리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기업이 생겼다.

이 설명은 오랫동안 유효했다. 인터넷이 나와도 클라우드가 보급돼도 그랬다. 거래비용은 줄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AI 에이전트가 이 균형을 다시 흔들고 있다.

네 가지 숨은 비용

찾는 비용 — 수 주가 수 시간으로

거래 상대를 찾고 가격을 비교하는 비용이다.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는 비용도 여기에 든다.

Coupa 같은 조달 시스템은 AI를 활용해 공급업체를 찾고 구매 조건을 비교한다[2].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던 정보를 자동으로 정리한다. 여러 공급업체의 가격과 납기, 거래 조건도 함께 분석한다.

이전의 기술은 찾을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AI는 찾는 과정까지 대신하기 시작했다.

협상 비용 — 36만 시간이 수 초로

계약서를 쓰고, 조건을 조율하고, 법률 검토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이다.

JPMorgan Chase에는 COIN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2017년 보도에 따르면, 연간 36만 시간이 들던 대출 계약서 분석 업무를 자동화했다. 개별 문서를 검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초로 줄었다[3]. 다만 계약 협상 전체를 수초 만에 끝낸 것은 아니다.

Ironclad와 Harvey 같은 법률 AI도 계약서 검토를 돕는다. 주요 조항을 찾고 위험한 내용을 표시한다. 법률가가 반복적으로 읽고 비교하는 시간을 줄인다[4].

감시 비용 — 문제가 터진 후에서 터지기 전으로

상대방이 약속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비용이다. 물건 품질 검사, 납기 관리, 성과 확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Siemens는 산업용 AI를 활용해 제품의 결함과 설비 이상을 찾아낸다[5]. 공급망 관리 시스템도 납품 지연과 재고 부족을 예측한다. 사람이 모든 현장을 확인하지 않아도 문제의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

과거의 감시는 주로 사후적이었다. 문제가 생긴 다음에 발견했다. AI는 사전에 경고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재 비용 — 분쟁 처리의 자동화

약속을 어겼을 때 따지고 해결하는 비용이다.

Visa는 AI를 활용해 사기 거래를 찾아낸다. 2023년에는 약 400억 달러 규모의 사기 거래를 사전에 차단했다고 발표했다[6]. 금융회사는 이런 기술로 의심스러운 거래를 빠르게 걸러낸다. 피해가 발생한 뒤 처리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변화도 있다. 스마트 계약은 미리 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대금을 자동 지급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지급을 보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법적 분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계약의 해석과 책임을 둘러싼 다툼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비용

네 가지 비용이 크게 줄어도 하나는 남는다. "판단 비용"이다.

AI가 거래 상대를 찾고 계약서를 쓴다. 이행을 감시하고 위반도 찾아낸다. 그러나 "이 거래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사람을 참여시키는 이유다.

사람이 책임져야 할 판단은 세 가지다.

첫째, 목표를 정하는 일이다. AI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도록 설계된다. 그러나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는 기업이 결정해야 한다. 매출만 높이도록 지시하면 고객의 장기 신뢰를 희생할 수도 있다.

둘째, 예외를 처리하는 일이다. AI가 접하지 못한 상황이나 규정이 애매한 영역이다.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경우도 그렇다. 예외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는 업무마다 다르다. 드물게 일어나도 그 결과는 클 수 있다.

셋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이다. 법적으로 문제없지만 적절하지 않은 결정이 있다. 당장은 이득이지만 장기적으로 위험한 선택도 그렇다.

McKinsey에 따르면 현재 기술은 전체 업무시간의 60~70%에 해당하는 활동을 자동화할 잠재력이 있다[7]. 실제로 그만큼 자동화됐다는 뜻은 아니다. 남은 업무가 반드시 더 높은 가치를 만든다는 뜻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업무량과 판단의 중요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I 전환의 성패는 자동화 비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판단을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의 설계도 중요하다.

회사의 경계가 달라진다

경제학자 Oliver Williamson은 거래의 성격을 봤다. 거래에 필요한 투자가 얼마나 특수한지, 불확실성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직접 할지 외부에 맡길지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8]. AI가 이 판단 기준을 바꾸고 있다.

첫째, 회사만의 특수한 지식을 활용하기 쉬워진다. 특정 회사의 회계 방식이나 고객 취향이 그렇다. 과거에는 담당자의 경험에 의존했다. AI는 이런 지식을 정리하고 재사용하도록 돕는다. 다만 영업비밀이나 조직의 경험까지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일부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AI 예측 모델은 납기 지연 가능성과 고객 이탈 위험을 계산한다. 가격 변동도 예측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불확실성도 만든다. AI의 오류와 보안 문제, 책임 소재가 그렇다.

셋째, 상대방의 꼼수를 발견하기 쉬워진다. 정보를 한쪽만 가지고 있을 때 부당한 거래가 가능하다. AI는 거래 기록을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찾아낸다. 그러나 정보 격차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결과는 한 방향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외부 거래비용이 더 많이 줄면 기업은 업무를 밖으로 맡기기 쉬워진다. 반대로 내부 관리비용이 더 많이 줄면 기업은 더 넓은 업무를 직접 운영할 수도 있다. Accenture도 AI를 활용한 조달 업무의 속도와 비용 개선을 강조한다[9].

그렇다고 회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 판단과 이해관계 조율, 책임의 배분에는 여전히 조직이 필요하다. 회사의 모양이 바뀐다. 회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편의 논리

거래비용이 낮아지면 회사가 작아진다는 결론에는 반론이 있다. 2026년 8월 California Management Review에 분석이 실렸다. 거래비용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11].

직원들이 각자 에이전트를 쓰면 당장의 업무비용은 줄어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일하는 방식이 개인의 작업 절차로 옮겨간다. 개인 계정과 설정에도 쌓인다. 회사는 그 과정을 제대로 보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비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분석은 에이전트 도입 자체를 경쟁력으로 보지 않는다. 에이전트가 하는 일을 기록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관리하는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도입률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지식을 조직에 남기는 일이다.

같은 해 나온 다른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12]. AI 도구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이 표준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새로운 도구를 연결하는 비용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직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실제로 검증할 수 있는 가설로 제시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연구를 나란히 놓으면 질문이 분명해진다. 거래비용은 줄어드는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는가. 답은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통된 규칙과 기록 체계가 있으면 줄일 수 있다. 개인에게 흩어지면 새로운 비용이 생긴다.

AI도 대리인이다

회사에서 사장이 직원에게 일을 맡기면 직원이 사장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이것을 경제학에서 "대리인 문제"라고 부른다[10].

AI는 이 문제의 일부를 줄일 수 있다. 거래를 기록하고 업무 결과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이 있다고 해서 모든 판단 과정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I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대리인 문제가 생긴다.

AI에게 "매출을 올려라"고 지시했다고 하자. AI가 해석한 "매출 올리기"와 사장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이것이 AI의 목표를 사람의 의도와 일치시키는 문제다. 여러 단계로 일을 맡길 때는 더 복잡해진다. 사람이 AI에게 지시하고 그 AI가 다른 AI에게 다시 지시한다. 각 단계에서 의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제는 아직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

JK's Take

기업 비용의 상당 부분은 "일을 하는 비용"이 아니다. "일을 시키고 확인하고 검증하는 비용"이다. 거래비용은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다.

AI가 이 비용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줄어드는 비용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여전히 남는 비용이 있다. "이 거래를 해야 하는가", "이 정도면 충분한가", "이것이 옳은 판단인가". AI도 이런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답을 받아들일지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별개다.

AI 전환에서 진짜 질문은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가"만이 아니다. "어떤 판단을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다. 앞은 효율화고 뒤는 구조 전환이다.

What to Watch

— AI 에이전트끼리 직접 거래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B2B 구매에서도 AI가 공급업체를 비교하고 거래 조건을 조율할 수 있다. 다만 실제 계약 권한과 책임까지 어디까지 맡길지는 별개의 문제다. 회사의 경계가 다시 그려질 수 있다.

— 자동화 비율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판단하는 지점의 설계다. 어떤 판단을 사람에게 남기고, 어떤 조건에서 개입하게 할 것인가. 이것이 AI 전환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 "AI도 대리인이다"라는 인식이 중요해질 것이다. AI의 목표가 회사의 진짜 목표와 맞는가. 여러 AI가 연쇄로 일할 때 누가 책임지는가. 이 둘이 핵심 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 2026-10-17 업데이트: 확인되지 않은 수치에 연결된 설명을 고치고, 실제로 확인 가능한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했다. 참고문헌 번호는 유지했다.

References

[1] Coase, R. H., "The Nature of the Firm", Economica, 1937. —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시장 거래에 필요한 비용으로 설명한 고전 논문이다.

[2] Coupa, "AI-Powered Procurement". — AI를 활용해 공급업체 탐색과 구매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사례다. 원문에 제시된 50~70% 단축 수치는 확인되지 않아 제외했다.

[3] Bloomberg, "JPMorgan Software Does in Seconds What Took Lawyers 360,000 Hours", 2017-02-28. — COIN의 36만 시간은 대출 계약서 분석에 투입되던 연간 업무시간이다.

[4] Ironclad, "AI for Contract Review"; Harvey, 공식 웹사이트. — 계약서 검토에 AI를 활용하는 사례다. 제품의 성능과 특정 고객의 비용 절감 효과를 구별해야 한다.

[5] Siemens, "Digital Industries". — 산업용 AI와 자동화 기술의 적용 사례다. 원문의 불량 탐지율 99.7%와 인력 30% 감소는 해당 출처에서 검증하지 못했다.

[6] Visa, "AI Fraud Prevention", 2024. — Visa는 2023 회계연도에 400억 달러 규모의 사기 거래를 사전에 차단했다고 밝혔다. 단일 AI 모델의 정확도나 순수한 피해 절감액을 나타내는 수치는 아니다.

[7] McKinsey Global Institute, "The Economic Potential of Generative AI", 2023. — 업무시간의 60~70%에 해당하는 활동에 자동화 기술을 적용할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이다. 사람에게 남는 업무가 가치의 80%를 창출한다는 주장은 포함하지 않는다.

[8] Williamson, O. E., "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 Free Press, 1985. — 거래의 특수성, 불확실성, 기회주의적 행동 등을 통해 기업 내부 수행과 시장 거래의 선택을 설명한다.

[9] Accenture, "Sourcing and Procurement Consulting". — AI와 업무 자동화를 활용한 조달 혁신 성과를 소개한다. 조달 프로세스 속도 최대 4배 개선은 Accenture가 제시한 성과 수치이며, 모든 기업의 평균은 아니다.

[10] Jensen, M. C. & Meckling, W. H., "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1976. — 일을 맡기는 사람과 수행하는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 차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설명한 논문이다.

[11] Thierry Warin, "The Coasean Fragility of Agentic Productivity",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2026-08-20. — 직원 개인에게 흩어진 AI 활용 방식이 조직의 통제력과 회복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직이 AI 작업 절차를 기록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2] Tassilo Klein & Sebastian Wieczorek, "The Headless Firm: How AI Reshapes Enterprise Boundaries", arXiv, 2026-02-24. — AI 에이전트 간 연결 방식이 표준화되면 새로운 실행 주체를 추가하는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이론적 모형을 제시한다. 실증적으로 확정된 결과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