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될 것: AI가 아무리 많이 알아도 지혜로울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인간의 경험이 왜 AI 시대에 더 가치 있어지는지*
도입: 노인의 한마디
2015년, 나는 한 중견 화학 기업의 사업 다각화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데이터는 명확했다. 새 사업의 시장 규모, 성장률, 경쟁 구도, 예상 수익률. 모든 지표가 긍정적이었다. 팀은 확신에 차 있었다.
보고를 마치자 70대 회장이 말했다. "숫자는 좋은데, 이 사업은 하면 안 돼."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40년 전에 비슷한 사업을 했는데, 이 업종은 고객 관계가 표면적으로 좋아 보여도 실제로는 전환 비용이 매우 낮아. 우리 같은 후발주자가 들어가면 가격 전쟁에 빠지게 돼 있어. 숫자에는 그게 안 보이지."
그의 말이 맞았다. 2년 뒤 그 업종에 뛰어든 경쟁사가 정확히 그 시나리오를 겪었다.
70대 회장의 판단은 어디에서 왔는가. 데이터에서 온 것이 아니다. 40년의 경험에서 왔다. 수십 번의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체득한 패턴. 숫자에 담기지 않는 업종의 속성. 이것은 지식이 아니다. 지혜다.
7.1 지식이란 무엇인가
구분을 명확히 하자.
지식은 사실과 정보의 체계화된 집합이다. "한국의 GDP는 약 1.7조 달러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는 2017년에 발표되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40퍼센트다." 이것이 지식이다.
지식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전달 가능하다. 책에 쓸 수 있고, 강의로 가르칠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할 수 있다. 검증 가능하다.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축적 가능하다. 한 사람이 모은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줄 수 있다.
AI는 지식에서 인간을 압도한다. GPT-4는 인류가 수천 년간 축적한 지식의 상당 부분을 학습했다. 의학, 법학, 공학, 역사, 철학. 어떤 분야의 전문가보다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깊이에서는 전문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폭에서는 어떤 인간도 AI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AI의 지식은 매년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의 가치는 떨어지는가. 맞다. 적어도 "많이 아는 것"의 가치는 떨어진다. 구글이 등장했을 때 "외우는 것"의 가치가 떨어진 것처럼, AI가 등장하면서 "아는 것"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중에서, AI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몇 퍼센트인가? 나머지, AI가 답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앎인가?
7.2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지혜는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는가"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여기서 "옳은"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옳다는 것은 맞다는 것과 다르다. 맞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한다는 뜻이다. 옳다는 것은 상황과 맥락과 가치를 고려했을 때 적절하다는 뜻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는가. 지식의 차원에서는 "예"다. 환자는 자기 상태를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혜의 차원에서는 "때에 따라 다르다." 80세 말기 암 환자에게 예상 수명 6개월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과, 가족에게 먼저 알리는 것과, 환자의 성격과 상태를 고려해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이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의 영역이다.
지혜의 특성을 보자. 전달하기 어렵다. 책으로 가르칠 수 없다.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검증하기 어렵다. 맞는지 틀렸는지를 판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수년, 수십 년이 지나야 안다. 축적 방식이 다르다. 한 사람의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직접 전수할 수 없다. 비슷한 경험을 스스로 겪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프로네시스라고 불렀다[^1]. 실천적 지혜. 올바른 때에 올바른 행동을 올바른 이유로 하는 능력. 그는 이것이 지식이나 기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앎이라고 했다.
2300년 전의 통찰이 AI 시대에 다시 빛을 발한다.
7.3 AI에게 지혜가 있는가
답부터 말하겠다. 없다. 적어도 지금은 없다.
이유를 보자.
첫째, AI에게는 가치가 없다.
지혜는 가치 판단을 포함한다.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이런 판단에는 가치 체계가 필요하다. AI에게는 그것이 없다. AI가 윤리적 답변을 할 때, 그것은 학습 데이터에 반영된 사회적 합의를 따르는 것이지, AI 자신의 가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둘째, AI에게는 후회가 없다.
지혜는 종종 실패에서 온다. 후회에서 온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아픔이 다음번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판단을 만든다. AI에게는 이 메커니즘이 없다. 강화학습에서 "벌"은 숫자의 변화일 뿐이다. 후회의 무게가 없다.
셋째, AI에게는 시간이 없다.
지혜는 시간이 만든다. 20대의 판단과 50대의 판단이 다른 것은 지식의 양 때문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겪은 것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AI에게 시간은 학습 데이터의 시간 축에 불과하다. 자신의 시간이 아니다.
30대의 나와 50대의 나는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다른 결론에 이른다. 30대의 나는 숫자를 봤다. 50대의 나는 숫자 뒤의 사람을 본다. 이것은 더 많은 지식 때문이 아니다.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실패, 더 많은 후회 때문이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인생에서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데이터에 기반했는가, 경험에 기반했는가? AI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7.4 T자형 인간의 시대
AI가 지식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경영학에서 T자형 인재라는 개념이 있다. 넓은 분야의 기본 지식(T의 가로 획)과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T의 세로 획)을 가진 사람.
AI 시대에 이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자. AI가 가로 획을 담당한다. 넓은 지식은 AI가 더 잘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세로 획에 집중해야 한다. 한 분야에서의 깊은 경험, 그 분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직관, 수십 년의 시행착오에서 나온 지혜.
그러나 여기에 하나 더해야 한다. AI를 활용하는 능력. 가로 획은 AI가 제공하지만, 그 AI의 가로 획을 자기 세로 획과 결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의 인간을 T+AI형이라 부르고 싶다. 깊은 경험의 축과, AI를 활용해 그 경험을 확장하는 능력.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가장 강력하다.
나 자신이 그렇다. 산업을 분석해온 경험이 세로 축이다. AI로 그 분석을 자동화하고 확장하는 것이 가로 축이다. 이 둘이 결합될 때, 어느 한쪽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간다.
7.5 경험 자산이라는 개념
한 가지 더 제안하고 싶은 개념이 있다. 경험 자산.
금융에서 자산은 미래의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험도 자산이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더 나은 판단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모든 경험이 자산은 아니다. 성찰 없이 반복된 경험은 자산이 아니라 타성이다.
경험이 자산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다양성. 같은 종류의 경험만 반복하면 시야가 좁아진다. 다른 산업, 다른 문화, 다른 관점을 접해야 한다. 다른 산업, 다른 문화, 다른 관점을 접해야 한다.
둘째, 깊이. 표면적 경험은 표면적 판단만 만든다. 한 프로젝트를 6개월 해본 것과 3년 매달린 것의 차이는 크다. 깊이 들어가야 보이는 것이 있다.
셋째, 성찰. 가장 중요하다. 경험 자체는 재료일 뿐이다. 그것을 돌아보고, 분석하고, 교훈을 추출해야 자산이 된다.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을까."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할까." 이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
AI 시대에 경험 자산의 가치는 올라간다. 정보는 AI가 대체하지만, 경험 자산은 대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AI가 정보를 처리해주는 덕분에, 인간은 경험 자산을 쌓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이것이 역설적 기회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경험 자산을 목록으로 만들어보자. 다양성은 충분한가? 깊이는 있는가? 성찰을 하고 있는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당신만의 경험 자산은 무엇인가?
7.6 아는 것을 넘어서
이 장을 요약하자.
지식은 AI가 이긴다. 이미 이겼다. 앞으로 더 크게 이길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다르다. 지혜는 경험과 가치와 시간이 만든다. AI에게는 이것들이 없다.
AI 시대에 "많이 아는 사람"의 가치는 떨어진다. "깊이 경험하고 성찰하는 사람"의 가치는 올라간다. 지식이 무료가 되는 시대에, 지혜는 더 희소해지고 더 비싸진다.
이것은 위로가 아니다.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을 정확히 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다음 장에서는 인간의 또 다른 고유한 능력을 본다. 질문을 만드는 능력. AI는 답을 잘한다. 그러나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것,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핵심 정리
지식은 사실과 정보의 체계화된 집합이다. AI는 지식에서 인간을 이미 압도하며, 그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옳은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지혜에는 가치 체계, 후회의 경험, 시간의 무게가 필요하다. AI에게는 이것들이 없다.
AI 시대에는 T+AI형 인간이 필요하다. 한 분야의 깊은 경험과 AI 활용 능력의 결합이 가장 강력하다.
경험 자산은 다양성, 깊이, 성찰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출 때 가치를 가진다. AI가 정보를 대체할수록 경험 자산의 상대적 가치는 올라간다.
"많이 아는 것"의 가치는 떨어지고, "깊이 경험하고 성찰하는 것"의 가치는 올라간다.
반드시 답해봐야 할 질문 5가지
질문 1. 당신이 가진 지식 중에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인가, 지혜인가?
질문 2.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를 현대 직업인의 맥락에서 재해석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당신의 직업에서 실천적 지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질문 3. T+AI형 인간이 된다면, 당신의 세로 축(깊은 전문성)은 무엇이고, AI가 보완하는 가로 축은 무엇인가?
질문 4. 당신의 경험 자산을 점검해보자. 다양성, 깊이, 성찰 중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
질문 5. "지식이 무료가 되는 시대에 지혜는 더 비싸진다"는 명제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지혜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더 깊이 탐구하기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의 원전. 2300년 전의 통찰이 AI 시대에 다시 의미를 가진다.
배리 슈워츠·케네스 샤프, 「Practical Wisdom」 (2010).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안티프래질」 (2012). 불확실성과 충격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시스템. 경험 자산의 형성 메커니즘과 연결된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철학. 교세라 창업자가 말하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의 중요성.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지식 노동자의 시대에서 AI 시대로의 전환을 생각하게 하는 고전.
다음 장에서는 인간의 가장 독특한 능력으로 간다. 질문을 만드는 능력.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능력. AI는 답을 잘한다. 그러나 물어야 할 질문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각주
Aristotle, *Nicomachean Ethics*, Book VI. 프로네시스(phronesis, 실천적 지혜)를 기술(techne)·학문(episteme)과 구분한 원전. 번역본으로는 이창우·김재홍·강상진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제이북스, 2006) 참조.
Michael Polanyi, *The Tacit Dimens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6).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암묵지(tacit knowledge) 개념의 원전.
Nassim Nicholas Taleb, *Antifragile: Things That Gain from Disorder* (New York: Random House, 2012). 불확실성과 충격 속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시스템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