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될 것: Enterprise AI Agent 시장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 주요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대부분의 기업 AI 프로젝트가 데모에서 멈추는지*
도입: 데모는 완벽했다
2024년 가을, 한 대기업의 임원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컨설팅 회사가 AI Agent 데모를 보여줬다. 고객 문의가 들어오면 Agent가 자동으로 분류하고, 과거 이력을 조회하고, 답변 초안을 만들어 상담원에게 전달했다. 3분 걸리던 일이 15초로 줄었다. 화면에서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바로 합시다."
석 달 뒤, 나는 그 회사의 현업 담당자를 만났다. 물었다. "그 Agent 잘 되고 있습니까?" 그가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데모는 완벽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연결하려니까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고객 데이터가 세 개 시스템에 분산되어 있는데, 하나는 보안 검토를 통과 못 했고, 하나는 API가 없고, 하나는 담당 부서가 데이터를 안 내놓겠다고 합니다. 지금 PoC 환경에서만 돌아가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나는 데이터 분석에서 시작해 머신러닝 기반 컨설팅을 거치는 동안 다른 형태로 수십 번 들었다. ERP가 그랬다. CRM이 그랬다. RPA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 AI Agent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기술은 매번 준비되어 있었다. 조직이 준비되지 않았다.
3부는 기업의 이야기다. 개인 Agent를 만드는 것과 기업 Agent를 도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개인은 혼자 결정한다. 기업은 수십, 수백 명이 엮여 있다. 개인의 데이터는 하나의 폰 안에 있다. 기업의 데이터는 열 개의 시스템에 흩어져 있다. 개인은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기업은 실패하면 예산이 날아가고, 관련자가 책임을 진다.
그래서 기업의 Agent 도입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제다. 이 장에서는 그 조직 문제를 보기 전에, 먼저 시장의 지형부터 그린다. 누가 무엇을 팔고 있는가.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왜 현장에서 멈추는가.
14.1 시장의 크기와 성장 — 숫자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Enterprise AI Agent 시장은 지금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적어도 숫자만 보면 그렇다.
업계 분석 기관들은 Enterprise AI Agent 시장을 2025년 약 50억 달러, 2028년까지 약 200억 달러 규모로 추정한다. 맥킨지는 2025년 초 보고서에서 생성형 AI 전체의 기업 도입률이 2024년 약 65%에서 2025년 약 75%로 올랐다고 밝혔다. 포레스터 리서치는 2026년까지 포춘 500 기업의 절반 이상이 하나 이상의 자율 Agent를 운영 환경에 배포할 것으로 전망했다.
숫자는 화려하다. 그러나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도입과 정착은 다르다. 맥킨지 같은 보고서에서 "도입률 75%"라고 할 때, 그 도입은 PoC(개념 증명)를 한 번 해본 것도 포함한다. 실제 운영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그보다 훨씬 낮다. 맥킨지 자체 조사에서도 생성형 AI를 PoC 이상으로 확장한 기업은 전체 도입 기업의 절반 이하였다.
이 격차를 업계에서는 Pilot Purgatory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파일럿 연옥"이다. 시작은 하는데 끝나지도, 확대되지도 않는 상태. 데모는 성공하는데 현업 적용은 멈추는 상태. 보고서에는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쓰지 않는 상태.
나는 이 패턴을 너무 잘 안다. 1990년대 후반 ERP 도입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나는 컨설팅 현장에 있었다. SAP을 도입하면 모든 것이 효율화된다고 했다. 기술은 실제로 좋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엉뚱한 곳에서 막혔다. 부서 간 데이터 정의가 달랐다. 영업부의 "매출"과 재무부의 "매출"이 같은 단어인데 다른 숫자였다. 그것을 맞추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AI Agent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술은 충분하다. 조직이 준비되지 않아서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회사에서 AI 관련 PoC를 진행한 적이 있는가? 그것이 실제 운영으로 이어졌는가?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기술 때문이었는가, 조직 때문이었는가?
14.2 글로벌 플레이어 — 네 개의 진영
Enterprise AI Agent 시장에는 크게 네 개의 진영이 형성되어 있다. 각 진영의 전략이 다르다.
첫 번째, 마이크로소프트 진영. Microsoft 365 Copilot이 대표 제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명확하다. 이미 전 세계 기업의 사무 환경을 장악하고 있는 Office 365, Teams, Azure 위에 AI를 얹는 것이다. Copilot은 Word에서 문서를 쓰고, Excel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Teams에서 회의록을 정리한다. 2025년 기준 Copilot 유료 사용자는 수백만 명 수준이다. 강점은 기존 업무 환경과의 자연스러운 통합이다. 약점은 깊은 업무 자동화보다는 표면적 보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똑똑한 자동완성"이라는 비판이 여전히 따라다닌다.
두 번째, 구글 진영. Google Agentspace가 2025년에 본격 출시되었다. 구글의 전략은 검색과 데이터 인프라의 강점을 기업 내부로 확장하는 것이다. Agentspace는 기업 내부 문서, 이메일, 드라이브, 캘린더를 통합 검색하고, 그 위에서 Agent가 작업을 수행한다.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쓰는 기업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지다. 특히 NotebookLM의 기업 버전이 결합되면서, 사내 지식 관리 영역에서 강점을 보인다.
세 번째, 세일즈포스 진영. Salesforce는 2024년 말 AgentForce를 발표하고 2025년부터 본격 확산시키고 있다. 세일즈포스의 전략은 CRM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객 응대 자동화다. 영업, 서비스, 마케팅 영역에서 Agent가 고객과 직접 상호작용한다. 세일즈포스의 고객 기반이 워낙 크기 때문에, CRM 중심 기업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마크 베니오프는 "소프트웨어의 끝, Agent의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과장이 섞여 있지만, 방향은 맞다.
네 번째, 서비스나우 진영. ServiceNow는 IT 서비스 관리(ITSM)와 업무 흐름 자동화의 강자다. Now Assist라는 AI 기능을 통해 IT 헬프데스크, HR 서비스, 고객 서비스 워크플로를 자동화한다. ServiceNow의 강점은 워크플로 엔진이다. 단순히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승인, 에스컬레이션, 라우팅 같은 실제 업무 흐름을 자동화한다. 이것은 Copilot형과는 다른 접근이다.
이 네 진영 외에도 AWS(Amazon Bedrock Agents), IBM(watsonx), SAP(Joule)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Agent를 내놓고 있다. 시장은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 패턴은 단순하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기의 기존 고객 기반 위에 AI를 얹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ffice 위에, 세일즈포스는 CRM 위에, 서비스나우는 ITSM 위에. 순수하게 AI Agent만으로 승부하는 신생 기업은 아직 대형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회사는 이 네 진영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가? 이미 쓰고 있는 플랫폼이 무엇인가에 따라 Agent 선택지가 크게 달라진다. 그 종속성을 의식하고 있는가?
14.3 한국 시장 — 따라가는 것과 만드는 것 사이
한국 Enterprise AI Agent 시장은 글로벌과 다른 특징이 있다.
먼저 공급 측이다. 한국의 주요 IT 서비스 기업들이 Agent 시장에 진입했다. 삼성SDS는 Brity Copilot을 중심으로 사내 업무 자동화 Agent를 제공한다. 삼성 그룹 내부에서 먼저 적용하고, 외부로 확산하는 전략이다. LG CNS는 자체 AI 플랫폼 DAP(Data Analytics Platform) 위에 Agent 기능을 올렸다. 제조업 중심의 프로세스 자동화에 강점이 있다. SK C&C는 에이닷(A.)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업용 AI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한국어 특화 Enterprise Agent를 제공한다. 한국어 처리 능력은 글로벌 모델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 특히 한국 기업 특유의 문서 양식, 보고 체계, 의사결정 구조를 반영한 Agent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도 카나나(Kanana) 모델을 기반으로 기업 시장에 진출했다.
수요 측은 더 복잡하다. 한국 대기업은 AI 도입에 적극적이다. 적어도 발표와 보도자료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현장의 실상은 다르다.
내가 최근 만난 한국 대기업의 디지털 전환 담당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AI 관련 PoC가 지금 서른 개 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실제로 현업에 정착한 것은 세 개입니다." 비율로 따지면 10%다.
왜 그런가. 한국 기업의 AI Agent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레거시 시스템의 벽. 한국 대기업은 1990년대에 도입한 ERP, MES, SCM 시스템이 아직 현역이다. 이 시스템들은 API가 없거나, 있어도 제한적이다. AI Agent가 이 시스템과 연결되려면 중간에 어댑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작업이 Agent 개발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둘째, 한국어 데이터의 특수성. 한국 기업의 내부 문서는 한글, 한자, 영어, 약어가 뒤섞여 있다. "FY24 2H 매출 실적 리뷰 회의록"처럼 한 문장에 세 개 언어가 섞인다. 이런 데이터를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글로벌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셋째, 보안과 규제. 한국 금융, 의료, 공공 영역은 데이터의 외부 반출에 대한 규제가 강하다. 클라우드 기반 AI Agent를 쓰려면 데이터가 외부 서버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규제와 충돌한다. 온프레미스(사내 설치형) 솔루션을 원하지만, 그러면 비용이 올라간다.
한국 시장은 지금 글로벌 솔루션을 가져다 쓸 것인가, 자체 솔루션을 만들 것인가의 갈림길에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체계적인 답은 다음 장에서 다룬다.
14.4 Enterprise Agent의 세 가지 유형
시장의 혼란 속에서도, Enterprise AI Agent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분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형에 따라 도입 난이도, 필요한 데이터, 조직적 준비, 기대 효과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유형: Copilot형. 사람 옆에 앉아서 돕는 Agent다. 문서를 요약하고, 이메일 초안을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회의록을 정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Copilot이 대표적이다. 이 유형의 특징은 최종 결정이 항상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Agent는 제안하고, 사람이 승인한다. 도입이 가장 쉽다. 왜냐하면 기존 업무 흐름을 크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과도 가장 제한적이다. 개인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조직 차원의 프로세스 혁신에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 유형: Workflow형. 정해진 업무 흐름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Agent다. 고객 문의를 분류하고, 적절한 담당자에게 배정하고, 1차 응답을 자동으로 보내고, 에스컬레이션 조건을 판단한다. ServiceNow의 Now Assist, Salesforce AgentForce의 서비스 Agent가 이 유형이다. 이 유형은 미리 정의된 규칙과 흐름 안에서 자율적으로 작동한다. Copilot형보다 효과가 크다. 반복적 업무를 실제로 줄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입이 어렵다. 업무 흐름을 명확히 정의해야 하고, 관련 시스템을 모두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유형: Autonomous형. 목표만 주면 스스로 판단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Agent다. 예를 들어 "이번 분기 고객 이탈률을 5% 줄여라"라는 목표를 주면, Agent가 이탈 위험 고객을 식별하고, 맞춤 프로모션을 설계하고, 실행 결과를 모니터링한다. 이 유형은 아직 초기 단계다. 2025년 기준으로 실제 운영 환경에서 Autonomous형 Agent를 돌리는 기업은 극소수다. 기술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가장 어렵다. 그러나 잠재적 효과는 가장 크다.
세 유형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다.
| 유형 | 자율성 | 도입 난이도 | 효과 | 대표 사례 |
|---|---|---|---|---|
| Copilot형 | 낮음 (제안) | 낮음 | 개인 생산성 향상 | MS Copilot, Google Agentspace |
| Workflow형 | 중간 (규칙 내 자율) | 중간~높음 | 프로세스 자동화 | ServiceNow, Salesforce AgentForce |
| Autonomous형 | 높음 (목표 기반) | 매우 높음 | 의사결정 자동화 | 일부 금융사 리스크 관리 |
대부분의 기업은 지금 Copilot형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나 Copilot형에 머물면 투자 대비 효과를 증명하기 어렵다. "문서 작성이 30% 빨라졌다"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매출이나 비용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증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Workflow형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전환이 Pilot Purgatory의 핵심 관문이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회사가 도입하려는(또는 도입한) AI Agent는 세 유형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Copilot형이라면, Workflow형으로 넘어가기 위해 어떤 업무 흐름을 먼저 자동화해야 하는가?
14.5 왜 현장에서 멈추는가 — Pilot Purgatory의 세 가지 원인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간다. 왜 대부분의 Enterprise AI 프로젝트는 현장에서 멈추는가.
내 경험으로는 원인이 크게 세 가지다. 기술이 아니다. 모두 조직의 문제다.
첫 번째 원인: 소유권 불명. AI Agent 프로젝트는 누구의 것인가. IT 부서의 것인가, 현업 부서의 것인가, 디지털 전환 조직의 것인가.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다.
IT 부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업무 요건은 현업이 정의해야 한다." 현업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AI를 모른다. IT가 좋은 솔루션을 가져다줘야 한다." 둘 다 맞고, 둘 다 빠진 것이 있다. AI Agent는 기술과 업무의 교차점에 서 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내가 데이터 분석 기반 컨설팅을 하던 시절부터 본 법칙이 있다. 소유자가 불명확한 프로젝트는 반드시 느려진다. ERP 때도 그랬다. 디지털 전환 때도 그랬다. AI 때도 그렇다. 해결책은 하나다. 처음부터 한 사람, 한 조직이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은 기술도 알고, 업무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지만.
두 번째 원인: 데이터 연결 지연. AI Agent가 작동하려면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 데이터는 대부분 기존 시스템 안에 갇혀 있다. ERP 안에, CRM 안에, 레거시 데이터베이스 안에. 이 데이터를 꺼내서 Agent에게 먹이려면 API 연결, 데이터 정제, 형식 변환이 필요하다.
이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한 대기업 사례에서는 Agent 모델 개발에 2개월,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에 8개월이 걸렸다. 비율이 2 대 8이다. Agent가 아무리 똑똑해도, 먹을 데이터가 없으면 쓸모없다.
특히 한국 기업에서 흔한 패턴이 있다. 데이터를 가진 부서가 데이터를 내놓지 않는 것이다. "보안상 문제가 있다",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아직 정리가 안 됐다."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데이터를 내놓으면 자기 부서의 통제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다.
세 번째 원인: 보안 검토 장기화.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AI Agent를 배포하려면 보안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 검토가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흔하다.
보안 팀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AI Agent는 사내 데이터를 읽고, 외부 API를 호출하고, 때로는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이 모든 것이 보안 위험이다. 특히 LLM 기반 Agent는 프롬프트 인젝션, 데이터 유출, 환각에 의한 잘못된 행동 같은 새로운 위험을 가진다. 기존의 보안 프레임워크로는 이 위험을 평가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보안 검토가 병목이 된다. Agent는 6개월 전에 개발이 끝났는데, 보안 검토를 1년째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에 기술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고, 예산이 줄어든다. 그리고 프로젝트는 조용히 사라진다.
이 세 가지 원인 — 소유권 불명, 데이터 연결 지연, 보안 검토 장기화 — 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소유자가 불명확하면 데이터 연결을 밀어붙일 사람이 없다.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으면 보안 검토 범위가 불분명해진다. 보안 검토가 늦어지면 프로젝트 동력을 잃는다. 세 가지가 서로를 강화하면서 프로젝트를 Pilot Purgatory에 가둔다.
14.6 지형을 읽은 뒤에 물어야 할 것
시장의 지형을 그렸다. 글로벌 플레이어, 한국 플레이어, 세 가지 유형, Pilot Purgatory의 세 원인. 이것이 2025~2026년 Enterprise AI Agent 시장의 현실이다.
이 현실 앞에서 기업이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큰 갈래가 두 개 있다. 만들 것인가(Build), 살 것인가(Buy). 이 선택이 기업 AI Agent 전략의 출발점이다.
만드는 쪽을 선택하면 자유도가 높다. 우리 업무에 딱 맞는 Agent를 설계할 수 있다. 데이터 주권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실패 위험도 크다.
사는 쪽을 선택하면 빠르다. 검증된 솔루션을 가져다 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업무에 완벽히 맞지 않을 수 있다. 벤더 종속의 위험도 있다. 데이터가 외부로 나가야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완전히 만들지도, 완전히 사지도 않는다. 그 사이의 스펙트럼에서 자기 위치를 정하는 것이 전략이다.
나는 금융·제조 산업에서 데이터 분석 기반 컨설팅과 AI 솔루션 사업을 거치면서 기업의 기술 도입을 봐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오답은 있다. 가장 흔한 오답은 이것이다. 아무 판단 기준 없이 유명한 벤더의 솔루션을 사는 것. 또는 아무 역량 점검 없이 처음부터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 둘 다 높은 확률로 Pilot Purgatory에 빠진다.
판단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다음 장에서 그 기준을 다룬다.
핵심 정리
Enterprise AI Agent 시장은 2025~2026년 사이에 급성장하고 있다. 가트너 기준 약 50억 달러에서 2028년 200억 달러로의 성장이 예측된다. 그러나 도입률과 정착률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이 격차가 Pilot Purgatory다.
글로벌 시장에는 네 개의 주요 진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Copilot), 구글(Agentspace), 세일즈포스(AgentForce), 서비스나우(Now Assist). 모두 자기의 기존 고객 기반 위에 AI를 얹는 전략이다.
한국 시장은 삼성SDS, LG CNS, SK C&C, 네이버클라우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경쟁하고 있다. 레거시 시스템, 한국어 데이터 특수성, 보안 규제가 한국 고유의 도전 요소다.
Enterprise Agent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Copilot형(제안), Workflow형(규칙 내 자율), Autonomous형(목표 기반 자율). 대부분의 기업은 Copilot형에서 시작하지만, 투자 대비 효과를 증명하려면 Workflow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AI 프로젝트가 현장에서 멈추는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다. 소유권 불명, 데이터 연결 지연, 보안 검토 장기화. 이 세 가지가 서로를 강화하며 프로젝트를 연옥에 가둔다.
반드시 답해봐야 할 질문 5가지
질문 1. 당신의 회사에서 진행 중인 AI 프로젝트 중 Pilot Purgatory에 빠진 것이 있는가? 그 원인은 소유권 불명, 데이터 연결 지연, 보안 검토 장기화 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가?
질문 2. 글로벌 플레이어(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와 한국 플레이어(삼성SDS, 네이버클라우드 등) 중 당신의 회사에 더 적합한 쪽은 어디인가? 그 판단의 기준은 기술인가, 데이터 주권인가, 비용인가?
질문 3. 당신의 회사가 도입하려는 Agent는 Copilot형, Workflow형, Autonomous형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현재 유형에서 다음 유형으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가?
질문 4. 기업 내 데이터를 가진 부서가 데이터를 내놓지 않는 문제를 겪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기술적 이유였는가, 조직적 이유였는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또는 해결하지 못했는가)?
질문 5. AI Agent의 보안 위험(프롬프트 인젝션, 데이터 유출, 환각에 의한 오작동)에 대해 당신의 회사는 어떤 프레임워크를 가지고 있는가? 기존 IT 보안 프레임워크로 AI Agent의 위험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더 깊이 탐구하기
가트너, 「Magic Quadrant for Enterprise Conversational AI Platforms」 (최신판). AI Agent 시장의 주요 벤더 분석.
맥킨지, 「The State of AI in 2025」 (2025). 기업의 생성형 AI 도입 현황과 도입 기업과 미도입 기업의 성과 차이를 분석한 연례 보고서다.
포레스터 리서치, 「The State of AI in Enterprise」 (최신판). 기업 AI 도입 현황과 전망.
세일즈포스, 「AgentForce Architecture Guide」 (2025). CRM 기반 Agent의 설계 철학과 기술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공식 문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국내 AI 산업 실태조사 2025」 (2025). 한국 기업의 AI 도입 현황과 과제를 정리한 정부 보고서다.
다음 장에서는 Enterprise Agent 전략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들어간다. 직접 만들 것인가, 사서 쓸 것인가. 이 질문에 감이 아니라 기준으로 답하는 방법, Build vs Buy 판단 프레임워크의 일곱 가지 변수를 다룬다.